저축과 비상금
예산을 짜서 한 달에 얼마를 남길지 정했다면, 이제 그 돈을 어디에 어떤 순서로 담을지 정할 차례다. 저축은 이자를 많이 받는 기술이기 전에, 예상하지 못한 지출이 빚으로 번지지 않게 막는 장치다. 이 장은 비상금부터 시작해 입출금·파킹통장, 정기예금, 정기적금이 실제로 이자를 어떻게 주는지, 광고 금리와 손에 쥐는 이자가 왜 다른지, 은행이 무너지면 어디까지 돌려받는지를 하나씩 손으로 움직여 확인한다.
- 예상 못한 지출이 카드빚으로 번지는 경로를 보고, 비상금의 크기를 필수지출과 직업 안정성으로 정한다.
- 입출금통장, 파킹통장, 정기예금, 정기적금이 돈을 받고 이자를 주는 방식의 차이를 말한다.
- 적금의 '연 5%'가 원금 전체에 대해서는 약 절반의 이자만 주는 이유를 계단 그림으로 설명한다.
- 이자소득세 15.4%를 떼고 세후 이자를 계산하고, 단리와 월복리, 중도해지 이율을 비교한다.
- 예금자 보호 한도(1인·1금융회사당 원리금 1억원)를 넘는 돈을 나눠 담는다.
- 목표 금액과 기간에서 필요한 월 저축을 거꾸로 계산하고, 자동이체와 선저축으로 습관을 만든다.
왜 비상금이 먼저인가
저축을 시작하는 사람이 가장 먼저 묻는 것은 "어디가 이자를 많이 주는가"다. 그런데 사회초년생의 돈이 크게 새는 곳은 이자 1%p의 차이가 아니다. 갑자기 이가 아파 치과에 가고, 노트북이 고장 나고, 계약이 끝나 이사를 해야 하는 달이다. 이런 지출은 예산에 없으니 통장에 남은 돈으로는 모자라고, 모자란 만큼은 거의 언제나 카드로 넘어간다.
비상금(Emergency fund)은 이런 지출을 받아 내려고 따로 떼어 둔 돈이다. 이자를 벌려는 돈이 아니라, 다른 돈이 빚으로 번지지 않게 막는 완충재다. 비상금이 없으면 한 번의 사고가 카드 할부, 리볼빙(Revolving), 현금서비스로 이어진다. 리볼빙은 카드값의 일부만 내고 나머지를 다음 달로 넘기는 결제 방식으로, 넘긴 돈에는 연 15~20%에 가까운 이자가 붙는다(9장에서 자세히 다룬다). 예금 이자가 연 3% 안팎이니, 비상금 없이 빚을 지는 순간 저축으로 버는 속도의 다섯 배쯤으로 돈이 빠져나간다.
아래 시뮬레이터에서 비상금과 사건의 크기를 바꿔 본다. 비상금이 사건보다 작으면 모자란 만큼이 카드 리볼빙(연 18%, 매달 잔액의 10% 또는 최소 5만원 결제)으로 넘어간다. 시간이 흐르며 비상금이 다시 채워지는 선과 카드빚이 줄어드는 선을 비교한다.
사건 하나가 빚이 되기까지
MN.revolving과 같다.)비상금 0원에서 200만원짜리 사건은 카드빚 200만원이 되고, 최소결제만 하면 27개월 동안 이자 약 30.6만원을 낸다. 같은 200만원을 비상금으로 막으면 이자는 0원이고, 매달 50만원씩 넉 달이면 원래대로 돌아온다. 비상금이 버는 이자는 작지만, 비상금이 막아 주는 이자는 크다. 그래서 순서는 비상금이 먼저다. 높은 금리의 적금이나 투자보다 앞선다.
비상금은 얼마나 있어야 하는가
흔히 쓰는 기준은 필수지출의 3~6개월치다. 여기서 필수지출은 한 달에 쓰는 돈 전부가 아니라, 소득이 끊겨도 줄일 수 없는 돈이다. 월세·관리비, 통신비, 교통비, 최소한의 식비, 대출 상환액, 보험료가 여기에 들어간다. 쇼핑·여가·외식처럼 위기 때 줄일 수 있는 돈은 뺀다. 필수지출이 월 150만원이라면 비상금 목표는 450만~900만원이다.
3개월과 6개월 사이의 어디를 고를지는 소득이 얼마나 안정적인지에 달려 있다. 가장 큰 비상 사건은 병원비가 아니라 소득이 끊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 상황 | 권장 크기 | 이유 |
|---|---|---|
| 정규직, 맞벌이, 업종이 안정적 | 3개월 | 실직 가능성이 낮고, 한 사람이 소득을 잃어도 다른 소득이 있다. |
| 정규직 혼자 벌이, 사회초년생 | 3~6개월 | 재취업까지 몇 달 걸릴 수 있고, 아직 다른 자산이 적다. |
| 계약직, 프리랜서, 자영업, 성과급 비중이 큰 직업 | 6~12개월 | 소득이 불규칙해 수입이 적은 달이 잦고, 구직급여를 받기 어려울 수 있다. |
| 부양가족이 있음, 지병이 있음 | 6개월 이상 | 사건이 생겼을 때 줄일 수 있는 지출이 적다. |
이 표가 정말 맞는지 직접 시험해 본다. 아래는 36개월 동안 무작위 사건이 일어나는 인생을 수백 번 돌리는 몬테카를로 시뮬레이션(Monte Carlo simulation)이다. 무작위로 여러 번 굴려 결과가 어떻게 퍼지는지 보는 방법이다. 해마다 일정한 확률로 실직, 병원비, 이사·수리, 경조사·가족 지원이 일어나고, 비상금이 바닥나면 그 순간부터 모자란 돈은 빚이 된다. 왼쪽은 그중 몇 개의 인생을, 오른쪽은 비상금 크기에 따라 "36개월 안에 한 번이라도 빚으로 넘어가는 확률"을 그린다.
비상금 스트레스 테스트
이 모델에서 '안정' 직업은 비상금 3개월치로 빚으로 넘어갈 확률이 10% 아래로 떨어지고, 6개월치면 몇 % 수준이 된다. '불안정' 직업은 6개월치를 갖고도 넷에 하나꼴로 빚을 지고, 12개월치쯤 되어야 비슷한 안심을 얻는다. 곡선은 처음에 가파르고 뒤로 갈수록 평평하다. 비상금이 0에서 1개월이 될 때가 가장 극적이고, 9개월에서 10개월로 늘리는 효과는 작다. 그 너머의 돈은 비상금보다 더 높은 수익을 노리는 곳에 두는 편이 낫다는 뜻이기도 하다.
저축률이 비상금 모으는 시간을 두 번 줄인다
비상금을 모으는 데 걸리는 시간은 얼마나 저축하느냐에 달려 있다. 그런데 저축률을 높이면 효과가 두 번 나타난다. 같은 월급에서 더 많이 저축하면 ① 매달 쌓이는 돈이 늘고 ② 지출이 줄어서 "지출 몇 개월치"라는 목표 자체가 작아진다. 저축률을 \(s\), 비상금 목표를 지출 \(k\)개월치라 하면 걸리는 기간은 \(k(1-s)/s\)개월이다.
저축률과 비상금 완성까지의 시간
곡선은 저축률이 낮은 쪽에서 아주 가파르다. 저축률 5%면 지출 6개월치를 모으는 데 9년 반이 걸린다. 그 사이 사건은 거의 확실히 한 번 이상 일어난다. 저축률이 낮은 사람에게 비상금이 '영원히 다 못 모으는 돈'처럼 느껴지는 이유다. 7장에서 예산을 다시 짜 저축률을 끌어올리는 일이 이 장의 모든 계산보다 앞선다.
돈을 담는 네 가지 그릇
비상금의 크기를 정했으면 어디에 둘지를 정한다. 은행의 저축 상품은 크게 네 가지다. 차이는 언제 넣고 언제 뺄 수 있는가, 그리고 이자가 무엇에 붙는가다.
- 입출금통장(Demand deposit): 월급이 들어오고 카드값이 빠져나가는 통장이다. 언제든 넣고 뺄 수 있지만 이자는 거의 없다(연 0.1% 안팎).
- 파킹통장(High-yield savings): 언제든 넣고 뺄 수 있으면서 하루하루의 잔액에 이자를 주는 수시입출금 통장이다. 차를 잠깐 세워 두듯 돈을 세워 둔다는 뜻이다. 금리는 시장 금리에 따라 수시로 바뀌고, 일정 금액까지만 높은 금리를 주는 경우가 많다.
- 정기예금(Time deposit): 목돈을 한 번에 넣고 정해진 기간(보통 6개월~3년) 동안 묶어 둔다. 만기에 원금과 이자를 한꺼번에 받는다. 금리는 가입할 때 정해지고 바뀌지 않는다.
- 정기적금(Installment savings): 매달 정해진 금액을 넣고 만기에 모은 돈과 이자를 받는다. 목돈이 없는 사람이 목돈을 만드는 상품이다.
| 그릇 | 넣고 빼기 | 금리 | 잘 맞는 돈 |
|---|---|---|---|
| 입출금통장 | 언제든 | 거의 0 | 이번 달 쓸 돈(월급, 카드값, 고정비) |
| 파킹통장 | 언제든 | 변동, 예금보다 조금 낮은 편 | 비상금, 몇 달 안에 쓸 목표 저축 |
| 정기예금 | 만기까지 묶임 | 가입 때 고정 | 이미 있는 목돈, 1~3년 뒤 쓸 돈 |
| 정기적금 | 매달 넣고 만기까지 묶임 | 가입 때 고정, 광고 금리가 높은 편 | 매달 남는 돈으로 목돈 만들기 |
비상금은 파킹통장이 제자리다. 비상금은 언제 필요할지 모르는 돈이라 만기까지 묶이는 예금·적금에 넣으면, 정작 필요할 때 깨면서 이자를 잃는다. 반대로 월급 통장에 그대로 두면 이자가 거의 없고, 무엇보다 생활비와 섞여 조금씩 새어 나간다. 비상금 통장을 따로 두는 가장 큰 이유는 이자가 아니라 섞이지 않게 하는 것이다.
적금의 '연 5%'는 왜 절반인가
"연 5% 적금, 월 50만원씩 1년." 많은 사람이 이 광고를 보고 600만원의 5%, 즉 30만원의 이자를 기대한다. 실제 세전 이자는 16만 2,500원으로 절반을 조금 넘는다. 은행이 속인 것이 아니다. 연 5%는 돈이 은행에 1년 동안 있을 때의 이율인데, 적금에서 1년을 꽉 채워 머무는 돈은 첫 달에 넣은 50만원뿐이기 때문이다. 둘째 달 돈은 11개월, 마지막 달 돈은 1개월만 이자를 받는다.
아래 격자에서 한 칸은 "한 달 치 납입액이 은행에 한 달 동안 머문 것"이다. 가로는 몇 번째 달에 넣은 돈인지, 세로는 몇 번째 달인지다. 재생을 누르면 한 달씩 지나며 칸이 채워진다. 녹색 칸이 적금, 그 뒤의 옅은 금색 칸은 같은 총액을 첫날 한꺼번에 넣었을 때(정기예금)다.
적금 계단: 이자가 붙는 칸 세기
칸을 세면 공식이 나온다. 월 납입액을 \(m\), 연이율을 \(r\), 기간을 \(n\)개월이라 하면, 첫 달 돈은 \(n\)개월, 둘째 달 돈은 \(n-1\)개월, …, 마지막 달 돈은 1개월 이자를 받는다. 1부터 \(n\)까지 더하면 계단의 칸 수 \(n(n+1)/2\)가 된다.
그래서 적금의 광고 금리를 원금 전체에 대한 이율로 바꾸면 약 절반이 된다. 연 5% 적금 12개월은 원금 600만원에 세전 16만 2,500원, 원금 대비 약 2.7%다. 이것을 체감 이율이라 부르자. 같은 600만원을 처음부터 갖고 있었다면 연 2.7%짜리 예금과 같은 이자다.
같은 1,200만원, 어디에 담을까
지금 1,200만원이 있고 1년 동안 쓸 일이 없다고 하자. 선택지는 셋이다. ① 정기예금에 한 번에 넣는다. ② 파킹통장에 둔다. ③ 금리가 더 높은 적금에 매달 100만원씩 넣고, 아직 넣지 않은 돈은 파킹통장에서 기다리게 한다. 세 금리를 바꿔 가며 1년 동안 쌓이는 세후 이자를 비교한다.
예금 vs 파킹통장 vs 적금 + 파킹
적금이 예금과 비기려면 적금 금리가 예금 금리의 약 두 배에서, 기다리는 돈이 파킹통장에서 버는 몫을 뺀 만큼은 되어야 한다. 기본값에서 그 경계는 약 4.8%다. 목돈이 있는 사람에게 적금의 높은 광고 금리는 생각보다 덜 매력적이고, 목돈이 없는 사람에게 적금은 거의 유일한 선택지다. 상품의 이름이 아니라 내 돈이 지금 어떤 모양인지가 고를 그릇을 정한다.
세전과 세후: 이자에서 떼는 15.4%
은행이 말하는 금리는 거의 언제나 세전 금리다. 이자를 받을 때는 이자소득세(Interest income tax)를 떼고 준다. 2026년 기준 세율은 소득세 14%와 그 10%인 지방소득세 1.4%를 합친 15.4%다. 은행이 미리 떼어 국가에 내므로(원천징수) 따로 신고할 일은 없다. 다만 이자와 배당을 합친 금융소득이 한 해 2,000만원을 넘으면 다른 소득과 합쳐 누진세율로 다시 계산한다(18장).
세후로 보면 연 3.5%는 연 2.96%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들어가면, 같은 1년 동안 물가가 2.5% 올랐을 때 1,000만원의 구매력은 25만원어치 줄어든다(3장). 세후 이자 29만 6,100원에서 이것을 빼면 실제로 늘어난 구매력은 연 0.45%뿐이다. 아래 폭포 그래프에서 금리와 물가를 바꿔, 광고 금리가 손에 쥐는 몫으로 줄어드는 과정을 본다.
광고 금리에서 실질 이익까지
단리와 월복리
이자를 계산하는 방식도 확인해야 한다. 단리(Simple interest)는 원금에만 이자를 붙이고, 월복리(Monthly compounding)는 매달 붙은 이자를 원금에 더해 다음 달에는 이자에도 이자를 붙인다(4장). 한국의 정기예금·적금은 대부분 단리이고, 월복리를 내세운 상품이 따로 있다. 1년짜리라면 차이가 작지만, 기간이 길어질수록 벌어진다.
1,000만원, 단리와 월복리의 간격
MN.deposit을 썼다.)금리를 비교할 때 볼 것
광고에 크게 적힌 숫자 하나만으로 상품을 비교하면 틀리기 쉽다. 같은 '연 5%'라도 다음을 확인하면 손에 쥐는 돈이 몇 배씩 달라진다.
- 예금인가 적금인가. 적금 금리는 원금 전체로 보면 약 절반이다.
- 기본금리인가 최고금리인가. 광고의 최고금리는 급여 이체, 카드 사용 실적, 자동이체 같은 우대금리(Preferential rate) 조건을 모두 채웠을 때의 숫자다. 조건을 하나씩 따져 내가 실제로 받을 금리를 계산한다.
- 납입 한도. 금리가 높은 적금은 월 납입 한도가 작은 경우가 많다. 연 10% 적금이라도 월 20만원 한도, 12개월이면 세후 이자는 10만 9,980원이다.
- 단리인가 월복리인가, 세전인가 세후인가.
- 중도해지 이율과 만기 후 이율. 만기 전에 깨면 약속한 금리의 일부만 주고, 만기 뒤 찾아가지 않은 돈에는 아주 낮은 금리를 준다.
- 예금자 보호 대상인가. 다음 절에서 다룬다.
| 해지 시점 (12개월 예금) | 적용 이율 예시 | 1,000만원·연 3.5%의 세전 이자 |
|---|---|---|
| 만기 | 3.5% | 350,000 |
| 9개월째 해지 (약정의 70% 적용 예) | 2.45% | 183,750 |
| 6개월째 해지 (약정의 40% 적용 예) | 1.4% | 70,000 |
| 1개월째 해지 (연 0.1% 예) | 0.1% | 833 |
중도해지 이율은 상품마다 다르며 표는 흔한 구조를 보여 주는 예시다. 9개월을 묶어 두고도 만기 이자의 절반쯤만 받는다. 비상금을 예금·적금에 넣으면 안 되는 또 하나의 이유다. 적금을 깨야 하는 일이 생기면, 깨기 전에 그 적금을 담보로 한 대출(예적금담보대출) 금리와 중도해지로 잃는 이자를 비교해 보는 방법도 있다.
예금자 보호: 은행이 무너지면
은행도 망할 수 있다. 그때 예금자를 지키려고 만든 제도가 예금자 보호(Deposit insurance)다. 금융회사가 예금보험공사에 보험료를 내 두고, 금융회사가 예금을 돌려주지 못하게 되면 예금보험공사가 대신 돌려준다. 2026년 기준 한도는 1인당, 1금융회사당 원금과 이자를 합쳐 1억원이다(2025년 9월에 5,000만원에서 올랐다).
- 1인당·1금융회사당: 같은 은행이면 지점이 달라도, 통장이 여러 개여도 합쳐서 1억원이다. 다른 금융회사라면 각각 1억원씩 따로 보호된다.
- 원리금 합계: 원금 1억원을 넣으면 그 이자는 한도를 넘는다. 원금은 이자를 감안해 1억원보다 조금 적게 넣어야 전부 보호된다.
- 대상: 은행·저축은행의 예금·적금·입출금통장, 보험회사의 보험계약, 증권사 계좌에 현금으로 남아 있는 예탁금 등이다. 신협·새마을금고·농협과 수협의 지역조합 같은 상호금융은 예금보험공사 대신 각 중앙회가 자체 기금으로 같은 한도까지 보호한다. 퇴직연금·연금저축 등은 일반 예금과 별도 한도로 보호한다.
- 대상이 아닌 것: 주식, 펀드, ETF, 채권처럼 원금이 바뀔 수 있는 투자상품은 은행 창구에서 샀더라도 보호 대상이 아니다. 투자상품의 손실은 금융회사가 망해서가 아니라 가격이 움직여서 생기기 때문이다.
아래에서 가진 돈의 총액을 정하고, 금융회사 다섯 곳의 막대를 끌어 나눠 담아 본다. 각 막대에는 원금(녹색)과 만기까지 붙을 이자(금색)가 함께 쌓이고, 원리금이 1억원 선을 넘는 부분은 빨갛게 표시된다.
예금자 보호 한도 안에 나눠 담기
사회초년생의 통장이 1억원을 넘을 일은 당분간 드물다. 그래도 이 제도를 알아 두어야 하는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같은 금리라면 예금자 보호를 받는 상품이 그렇지 않은 상품보다 안전하다는 점, 다른 하나는 '원금 보장', '확정 수익'이라는 말이 예금자 보호와 같은 뜻이 아니라는 점이다. 예금자 보호 대상이 아닌 상품이 은행 이자보다 훨씬 높은 수익을 '보장'한다면, 그 보장은 그 회사의 약속일 뿐이다(17장).
목표에서 거꾸로 계산하기
"매달 남는 만큼 저축한다"는 계획은 잘 지켜지지 않는다. 남는 돈이 달마다 다르고, 무엇을 위한 돈인지 모르면 쉽게 다른 데 쓰인다. 반대로 목표 금액과 기한을 먼저 정하고 매달 넣어야 할 돈을 거꾸로 계산하면, 저축은 예산의 고정비가 된다. 적금으로 모은다고 하면 만기 수령액이 목표가 되도록 월 납입액을 정한다.
아래 그래프의 오른쪽 끝 손잡이를 끌면 목표 금액(위아래)과 기간(좌우)이 함께 바뀐다. 막대는 매달 쌓인 원금이고, 마지막 막대 위의 금색은 만기에 받는 세후 이자다.
목표 역산 계산기
짧은 목표에서 이자는 거의 역할을 하지 않는다. 1년, 2년 단위의 목표를 이루는 힘은 금리가 아니라 월 저축액과 기간이다. 금리 0.5%p를 더 받으려고 여러 상품을 뒤지는 시간보다, 목표를 정하고 그 금액을 첫날 빼 두는 습관이 훨씬 큰 차이를 만든다. 금리가 힘을 쓰기 시작하는 것은 기간이 10년, 20년으로 길어질 때이고, 그것은 4장의 복리와 뒤의 투자 장들의 몫이다.
저축을 습관으로 만드는 장치
저축 계획이 실패하는 가장 흔한 이유는 계산이 틀려서가 아니라, 월말에 남는 돈이 계획보다 적어서다. 통장에 돈이 있으면 쓰게 된다. 쓸 수 있는 돈이 늘면 지출도 그만큼 늘어나는 경향이 있다. 이것을 거스르는 가장 단순한 방법은 순서를 바꾸는 것이다. 쓰고 남은 돈을 저축하지 말고, 저축하고 남은 돈을 쓴다. 이것을 선저축(Pay yourself first)이라 한다.
아래 두 항아리는 같은 사람의 같은 1년이다. 월 실수령 265.6만원, 계획한 지출 165.6만원, 계획한 저축 100만원. 달마다 지출은 조금씩 흔들리고 가끔 큰 지출도 생긴다. 왼쪽은 월말에 남은 돈을 저축하고, 오른쪽은 월급날 100만원을 먼저 저축 통장으로 옮긴다. '남은 돈을 흘려 쓰는 경향'은 통장에 계획보다 많은 돈이 보일 때 그중 얼마를 결국 써 버리는지다.
남으면 저축 vs 먼저 저축
선저축을 사람의 의지에 맡기지 않는 장치들이 있다.
- 월급날 자동이체: 월급이 들어오는 날(또는 다음 날) 저축·비상금 통장으로 자동이체를 걸어 둔다. 한 번 설정하면 매달 결심할 필요가 없다.
- 통장 나누기: 월급 통장(고정비·카드값), 생활비 통장(변동비), 비상금 통장(파킹), 목표 저축(적금)을 나눈다. 생활비 통장 잔고가 곧 이번 달 남은 예산이 된다.
- 보이지 않게: 비상금 통장은 체크카드를 연결하지 않고, 앱 첫 화면에서도 빼 둔다. 꺼내기 조금 번거로운 것이 장점이다.
- 오른 만큼 저축: 연봉이 오르거나 대출 하나를 다 갚으면, 늘어난 돈의 절반 이상을 자동이체 금액에 바로 더한다. 생활 수준이 늘어난 소득에 맞춰 부풀기 전에.
한결의 저축 계획
7장에서 한결은 예산을 다시 짜서 월 100만원을 저축하기로 했다. 이제 그 100만원을 어디에 담을지 정한다. 먼저 비상금 목표다. 한결의 한 달 지출 201.5만원 가운데 소득이 끊겨도 줄일 수 없는 돈만 골라냈다.
필수지출은 약 150만원이다. 한결은 정규직이고 회사 사정도 안정적이지만 혼자 벌고 아직 다른 자산이 없다. 3~6개월 가운데 4개월치, 약 600만원을 목표로 잡았다. 입사할 때 통장에 있던 300만원이 출발점이다. 아래에서 월 100만원 가운데 비상금 쪽으로 보낼 몫을 정한다. 나머지는 12개월 정기적금(연 3.5%)에 넣고, 비상금이 600만원을 채우면 그 뒤로 비상금 몫은 목표 저축 통장에 쌓인다.
한결의 월 100만원 나누기
월급날 100만원이 먼저 빠져나간다
한결은 월급날 다음 날로 자동이체 두 건을 걸었다. 50만원은 비상금 파킹통장으로, 50만원은 12개월 정기적금(연 3.5%)으로 간다. 입사 때의 300만원은 비상금 통장으로 옮겨 두었다. 비상금은 6개월째 필수지출 4개월치인 600만원을 채우고, 그 뒤로는 같은 50만원이 목표 저축으로 쌓인다.
적금 광고의 '연 3.5%'를 그대로 믿으면 21만원(600만원의 3.5%)을 기대하겠지만, 엔진으로 계산한 만기의 세전 이자는 113,750원이다. 여기서 이자소득세 17,510원을 떼면 세후 이자는 96,240원, 만기 수령액은 6,096,240원이다. 원금 대비로 세전 약 1.9%, 세후 약 1.6%다. 이자보다 중요한 것은 1년 뒤 한결의 손에 비상금 600만원과 목돈 610만원이 따로따로 있다는 사실이다. 두 통장 모두 원리금이 1억원에 한참 못 미치니 예금자 보호 한도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핵심 정리
- 비상금은 이자를 벌려는 돈이 아니라 예상 못한 지출이 연 15~20%짜리 카드빚으로 번지는 것을 막는 완충재다. 그래서 다른 저축과 투자보다 먼저 만든다.
- 비상금의 크기는 필수지출(소득이 끊겨도 줄일 수 없는 돈)의 3~6개월치이고, 소득이 불안정할수록 더 크게 잡는다. 처음 몇 개월치가 위험을 가장 크게 줄인다.
- 저축률을 높이면 쌓이는 돈이 늘고 지출 기준의 목표도 작아져, 비상금 완성까지의 시간이 두 번 줄어든다.
- 입출금·파킹통장은 언제든 꺼낼 수 있고, 예금·적금은 만기까지 묶는 대신 금리가 고정된다. 비상금은 파킹통장, 목돈은 예금, 매달 남는 돈은 적금이 제자리다.
- 적금 이자는 \(m \cdot \frac{r}{12} \cdot \frac{n(n+1)}{2}\)다. 마지막 달 돈은 한 달 치 이자만 받으므로 원금 전체로 보면 광고 금리의 약 절반(\(\frac{n+1}{2n}\))이다.
- 은행 금리는 세전이다. 이자소득세 15.4%(2026년 기준)를 떼고, 물가를 빼야 실제로 늘어난 구매력이 나온다. 단리와 월복리, 우대 조건, 납입 한도, 중도해지 이율을 함께 본다.
- 예금자 보호는 1인·1금융회사당 원리금 합계 1억원(2026년 기준)이다. 투자상품은 보호 대상이 아니다.
- 목표 금액과 기간에서 월 저축을 거꾸로 계산하고, 월급날 자동이체로 먼저 저축한다. 짧은 목표를 이루는 힘은 금리보다 저축액과 순서다.
확인 퀴즈
연 4% 정기적금에 월 100만원씩 12개월을 넣었다(단리). 만기의 세전 이자는 얼마인가?
프리랜서 디자이너 A의 수입은 달마다 크게 다르고, 월세·식비·보험료 등 필수지출은 월 200만원이다. A에게 가장 알맞은 비상금 목표는?
한 은행에 정기예금 원금 1억원을 연 3.5%, 1년으로 넣었는데 만기 직전에 은행이 파산했다(2026년 기준 제도). 예금자 보호로 돌려받을 수 있는 돈은?
"연 5%" 정기예금에 1,000만원을 1년 넣었다(단리). 이자소득세 15.4%를 뗀 세후 이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