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산배분
어떤 주식을 살지, 어떤 펀드가 좋을지에 사람들은 많은 시간을 쓴다. 그런데 내 돈이 한 해에 얼마나 흔들릴지를 가장 크게 정하는 것은 종목이 아니라 비율이다. 주식과 채권과 현금을 몇 대 몇으로 담았는가. 이 장은 그 비율을 정하는 원리를 다룬다. 서로 다르게 움직이는 자산을 섞으면 왜 위험이 줄어드는지, 그 가운데 "더 나은 조합"은 어디에 모여 있는지, 시간이 흐르며 흐트러진 비율을 왜 되돌려야 하는지, 그리고 나이와 견딜 수 있는 낙폭이 비율을 어떻게 바꾸는지를 직접 끌어 보며 확인한다.
- 주식·채권·현금·금이 포트폴리오에서 맡는 역할을 구분하고, 비율에 따라 기대수익·변동성·나쁜 해가 어떻게 바뀌는지 읽는다.
- 상관계수가 낮을수록 섞었을 때 위험이 줄어드는 원리를 두 자산 조합 곡선으로 설명한다.
- 효율적 투자선과 최소분산 포트폴리오, 무위험 자산과 섞는 직선(자본시장선)의 뜻을 말한다.
- 리밸런싱이 비율 표류를 막고 '싸게 사고 비싸게 파는' 일을 기계적으로 해 주는 원리와 그 비용을 이해한다.
- 인적 자본, 생애주기 글라이드 패스, 감내할 낙폭, 해외 분산과 환율을 고려해 자기 비율을 정하는 방법을 익힌다.
무엇을 사느냐보다 어떤 비율로 담느냐
같은 해에 같은 1,000만원으로 투자를 시작한 두 사람을 생각해 보자. 한 사람은 좋은 종목을 고르려고 몇 달을 공부했지만 돈의 대부분을 주식에 넣었다. 다른 사람은 종목은 시장 전체를 담은 지수로 간단히 정하고, 대신 주식과 채권의 비율을 고민했다. 주식 시장이 30% 떨어진 해, 두 사람의 계좌는 종목 선택보다 주식이 몇 %였는가에 따라 훨씬 크게 갈린다.
돈을 여러 종류의 자산에 어떤 비율로 나눌지 정하는 일을 자산배분(Asset allocation)이라 한다. 미국 연기금들을 분석한 유명한 연구들은 포트폴리오 수익률이 시간에 따라 오르내리는 폭의 대부분(90% 안팎)이 자산배분으로 설명된다고 보고했다. 이 숫자는 "수익의 90%가 배분에서 나온다"로 과장되어 인용되기도 하지만, 흔들림의 크기를 정하는 가장 큰 손잡이가 비율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먼저 재료를 보자. 이 책은 12장부터 같은 교육용 가정(MN.ASSETS)을 쓴다. 과거 장기 평균을 반올림한 대표값일 뿐, 앞으로 이렇게 된다는 보장은 없다.
아래 막대의 경계 세 개를 좌우로 끌어 비율을 바꿔 본다. 가운데 계기판의 나쁜 해는 기대수익에서 변동성의 두 배를 뺀 값(\(\mu-2\sigma\))이다. 수익률이 정규분포를 따른다면 약 40년에 한 번 이보다 나쁜 해가 온다는 뜻인데, 실제 시장은 꼬리가 두꺼워 이런 해가 더 자주 온다.
비율 막대: 네 자산을 나눠 담기
MN.ASSETS, 상관계수 MN.CORR, 1년 단위 정규분포 근사)두 번째 실험에서 눈여겨볼 것은 비대칭이다. 주식을 100%에서 70%로 줄이면 기대수익은 7.5%에서 6.3%로 16% 줄어드는데, 변동성은 16%에서 약 11.5%로 28% 가까이 줄어든다. 위험이 수익보다 빨리 줄어든다. 이것이 자산배분의 출발점이다. 단순한 가중 평균이라면 둘이 같은 비율로 줄어야 한다. 위험이 더 빨리 줄어드는 이유는 다음 절의 상관관계에 있다.
| 비율 (주식·채권·현금·금) | 기대수익 μ | 변동성 σ | 나쁜 해 μ−2σ |
|---|---|---|---|
| 주식 100 | 7.50% | 16.00% | 약 −24.5% |
| 70 · 30 · 0 · 0 | 6.30% | 11.52% | 약 −16.7% |
| 60 · 40 · 0 · 0 | 5.90% | 10.13% | 약 −14.4% |
| 40 · 40 · 10 · 10 | 5.10% | 7.39% | 약 −9.7% |
| 채권 100 | 3.50% | 6.00% | 약 −8.5% |
| 현금 100 | 2.50% | 1.00% | 약 +0.5% |
상관관계: 함께 움직이는 정도
두 자산이 같은 날 같이 오르고 같이 떨어지는 경향을 숫자 하나로 나타낸 것이 상관계수(Correlation coefficient, ρ)다. +1이면 늘 같은 방향으로 같은 비율만큼 움직이고, 0이면 서로 상관없이 움직이고, −1이면 늘 정반대로 움직인다.
아래 그림의 점 하나는 한 해의 성적이다. 가로는 자산 A의 수익률, 세로는 자산 B의 수익률이다. 두 자산은 기대수익(7%)과 변동성(20%)이 똑같다. 상관계수 슬라이더를 움직여 점구름의 모양과 오른쪽의 "반반 섞은 포트폴리오"의 흔들림을 비교해 본다.
상관계수와 섞었을 때의 흔들림
반반 섞은 포트폴리오의 수익률은 언제나 두 수익률의 평균이다. 그런데 흔들림은 평균이 아니다. 섞인 자산의 변동성은 다음 식으로 계산한다.
마지막 항이 핵심이다. \(\rho\)가 1보다 작으면 이 항이 작아져 \(\sigma_p\)가 단순 평균보다 작아진다. \(\rho\)가 음수면 오히려 빼진다. 한쪽이 나쁜 해에 다른 쪽이 덜 나쁘거나 좋으면 둘의 굴곡이 서로를 깎아 낸다. 이것이 12장에서 본 분산 효과(Diversification)의 수학이다. 기대수익은 그대로 두고 위험만 줄이는, 투자에서 거의 유일한 "공짜 점심"이라 불린다.
두 자산 조합 곡선
이제 실제 재료인 주식과 채권 두 가지만 놓고 비율을 0%에서 100%까지 바꿔 보자. 각 비율은 위험(가로)과 기대수익(세로) 평면 위의 한 점이 되고, 점들을 이으면 곡선이 된다. 상관계수가 1이라면 이 곡선은 두 자산을 잇는 직선이다. 상관계수가 낮아질수록 곡선은 왼쪽(위험이 작은 쪽)으로 휜다.
슬라이더로 상관계수를 바꾸면 곡선이 그 모양으로 천천히 휘어 간다. 곡선 위의 손잡이를 끌어 주식 비중을 고른다.
주식·채권 조합 곡선이 휘는 모습
MN.frontier2)두 번째 실험이 이 절의 핵심이다. 채권만 가진 사람이 주식을 조금 섞으면 기대수익은 오르고 위험은 내려간다. 위험한 자산을 더했는데 덜 위험해지는 것이다. 가정값에서는 주식 약 10%·채권 약 90%일 때 변동성이 약 5.8%로 가장 작다. 곡선에서 가장 왼쪽에 있는 이 점을 최소분산 포트폴리오(Minimum variance portfolio)라 한다.
최소분산점보다 아래쪽 곡선(채권 100%와 최소분산점 사이)에 있는 비율은 고를 이유가 없다. 같은 위험으로 위쪽 곡선에서 더 높은 수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극단으로 ρ = −1이면 주식 비중을 \(\sigma_B/(\sigma_A+\sigma_B) = 6/22 \approx 27.3\%\)로 맞췄을 때 두 자산의 흔들림이 정확히 상쇄되어 위험 0, 기대수익 약 4.6%가 된다. 현실에 그런 짝은 없지만, 상관이 낮은 짝을 찾는 이유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 준다.
효율적 투자선
자산이 세 개, 네 개로 늘어나면 가능한 비율은 곡선 하나가 아니라 평면 위의 넓은 영역을 채운다. 그 영역의 왼쪽 위 가장자리, 곧 같은 위험에서 기대수익이 가장 높은 조합들을 이은 선을 효율적 투자선(Efficient frontier)이라 한다. 1952년 해리 마코위츠가 정리한 현대 포트폴리오 이론의 중심 그림이다.
아래 그림의 작은 점들은 주식·채권·현금·금을 5% 단위로 섞은 조합 1,771개다. 평면 아무 데나 원하는 위험과 수익의 자리를 끌어 놓아 본다. 효율적 투자선 위에서 그 자리에 가장 가까운 배분이 그림 위쪽 막대로 나타난다.
효율적 투자선 위에서 배분 고르기
MN.portfolio, 투자선은 2% 단위 조합에서 구한 근사)네 번째 실험은 이 이론의 강점이자 약점을 함께 보여 준다. 가정상 금은 주식·채권과 거의 따로 움직이기 때문에 조금 섞으면 투자선이 좋아진다. 하지만 그 이득은 같은 위험에서 기대수익 0.1%p 남짓이다. 금의 기대수익을 4.5%가 아니라 3%로, 상관계수를 0.05가 아니라 0.3으로 잡으면 이득은 사라진다. 효율적 투자선은 입력한 가정만큼만 정확하다.
무위험 자산과 섞기
지금까지는 위험 자산끼리 섞었다. 여기에 흔들림이 거의 없는 현금(예금)을 더하면 그림이 하나 더 단순해진다. 현금을 무위험 자산(Risk-free asset)으로 보고 위험 자산 묶음 하나와 섞으면, 그 조합은 곡선이 아니라 직선 위에 놓인다. 현금은 흔들림이 0이라 상관계수 항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현금에서 출발한 직선을 효율적 투자선에 닿을 때까지 위로 돌리면, 기울기가 가장 가파른 직선 하나가 남는다. 이 직선을 자본시장선(Capital market line), 닿는 점을 접점 포트폴리오(Tangency portfolio)라 한다. 직선의 기울기, 곧 위험 1단위당 현금보다 더 얻는 수익이 샤프 지수(Sharpe ratio)다.
슬라이더로 위험 자산 묶음(접점 포트폴리오)에 돈의 몇 %를 넣을지 정한다. 100%를 넘기면 돈을 빌려 더 넣는 것이다.
현금과 위험 자산 묶음을 섞는 직선
가정값에서 접점 포트폴리오는 주식 약 42%·채권 약 44%·금 약 14%이고 샤프 지수는 약 0.35다. 주식 70·채권 30의 샤프 지수는 약 0.33으로 조금 낮다. 이론이 말하는 것은 이렇다. 위험 자산의 구성은 모두에게 같은 하나(접점)로 두고, 위험을 얼마나 질지는 현금과의 비율로 조절하라. 이를 분리 정리라 한다.
현실은 두 가지 이유로 이 그림에서 벗어난다. 첫째, 대부분의 개인은 싼 금리로 돈을 빌릴 수 없어서 100% 오른쪽의 직선은 꺾인다. 그래서 더 높은 수익을 원하는 사람은 빚을 지는 대신 위험 자산 묶음 안에서 주식 비중을 높인다. 둘째, 접점의 위치는 가정에 매우 민감하다. 그래서 실제 배분은 "현금은 비상금으로 따로 두고, 투자 자산은 주식과 채권의 비율로 위험을 조절하는" 방식이 흔하다.
리밸런싱: 비율은 저절로 흐트러진다
주식 70·채권 30으로 시작했다고 해서 그 비율이 유지되지는 않는다. 주식이 한 해 20% 오르고 채권이 3% 오르면, 주식 70은 84가 되고 채권 30은 30.9가 되어 비율은 약 73·27이 된다. 주식이 평균적으로 더 많이 오르니 내버려 두면 비율은 시간이 갈수록 주식 쪽으로 표류한다. 처음에 고른 위험보다 큰 위험을 나도 모르게 지게 되는 것이다. 흐트러진 비율을 원래대로 되돌리는 일을 리밸런싱(Rebalancing)이라 한다.
아래 시뮬레이터는 1,000만원을 주식 70·채권 30으로 넣고 30년을 한 번 굴린 장면이다. 위 그래프는 계좌 금액, 아래 그래프는 주식 비중이다. 색칠한 영역이 리밸런싱을 하지 않았을 때 주식 비중이 어디까지 떠내려가는지를 보여 준다. "다른 30년"을 눌러 여러 미래를 돌려 본다.
리밸런싱 vs 방치: 30년 한 경로
MN.paths. 거래 비용·세금 없음)'싸게 사고 비싸게 판다'가 자동으로 일어나는 원리
리밸런싱이 위험을 지키는 도구라고 했지만, 특별한 상황에서는 수익도 더해 준다. 주가가 오르내리기만 하고 제자리로 돌아오는 시장을 생각해 보자. 주식만 가진 사람은 몇 년 뒤 본전이다. 주식 반·현금 반으로 사 두고 그대로 둔 사람도 본전이다. 그런데 주기적으로 반반을 맞춘 사람은 돈이 늘어 있다. 오를 때 판 주식과 내릴 때 산 주식의 차이가 쌓이기 때문이다.
아래 애니메이션에서 진폭을 키우고 리밸런싱 주기를 바꿔 본다. 삼각형은 리밸런싱으로 판(▼) 때와 산(▲) 때다.
오르내리기만 하는 주식과 반반 리밸런싱
이 보너스는 장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실제 주식은 제자리로 돌아오는 대신 장기적으로 오르는 경향이 있어서, 오른 주식을 계속 팔아 채권으로 옮기면 상승을 덜 누린다. 앞 시뮬레이터에서 방치한 계좌가 최종 금액에서 이기는 경로가 많았던 이유다. 리밸런싱의 확실한 이득은 위험을 처음 정한 수준으로 묶어 두는 것이고, 수익 보너스는 시장이 크게 오르내릴 때 덤으로 따라온다고 보는 편이 정확하다.
정기 리밸런싱과 밴드 리밸런싱, 그리고 비용
언제 되돌릴지에는 크게 두 가지 방법이 있다.
| 방법 | 규칙 | 장점 | 단점 |
|---|---|---|---|
| 정기(달력) | 매년 1월처럼 정해진 날에 맞춘다 | 단순하고 잊지 않는다 | 그 사이 크게 흐트러져도 기다린다. 거의 안 흐트러져도 거래한다 |
| 밴드(허용 범위) | 목표에서 ±5%p 같은 범위를 벗어날 때만 맞춘다 | 필요할 때만 거래해 횟수가 적다 | 비율을 수시로 확인해야 한다 |
| 현금흐름 | 새로 넣는 적립금으로 모자란 쪽만 산다 | 팔지 않아 비용·세금이 거의 없다 | 잔고가 커지면 적립금만으로는 못 맞춘다 |
리밸런싱은 공짜가 아니다. 사고팔 때마다 매매 수수료와 호가 차이가 들고, 과세 계좌에서는 판 차익에 세금이 붙을 수 있다. 아래 시뮬레이터는 같은 미래 400개에서 세 가지 방법을 비교한다. 밴드 폭과 거래 비용을 바꿔 본다.
방치 · 연 1회 · 밴드: 400개의 30년
MN.paths 400쌍, 두 자산 독립, 세금 없음)여러 연구가 대체로 같은 결론을 낸다. 리밸런싱을 하느냐 마느냐는 큰 차이를 만들지만, 얼마나 자주 하느냐는 생각보다 차이가 작다. 연 1회, 또는 ±5%p 정도의 밴드면 충분하다. 매달 맞추는 부지런함은 비용만 늘린다. 적립식으로 투자하는 사람은 매달 넣는 돈으로 모자란 쪽을 먼저 사면 팔지 않고도 대부분을 맞출 수 있다.
나이와 자산배분: 나 자신이라는 채권
같은 사람에게도 알맞은 비율은 나이에 따라 달라진다. 흔히 "젊으니까 위험을 더 져도 된다"고 말하는데, 그 이유를 가장 잘 설명하는 개념이 인적 자본(Human capital)이다. 앞으로 일해서 벌 소득 전체를 지금 가치로 환산한 것을 하나의 자산으로 보는 관점이다.
안정된 직장의 월급은 매달 정해진 금액이 들어온다는 점에서 채권과 비슷하다. 27세 사회초년생은 통장 잔고가 몇백만원뿐이어도 수억원어치 채권(인적 자본)을 이미 들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전체 재산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금융 자산은 주식 쪽으로 기울여도 된다. 나이가 들면 인적 자본이 줄고 금융 자본이 커지므로, 금융 자산 안의 채권 비중을 차츰 늘려야 전체 균형이 유지된다.
아래 시뮬레이터는 한결의 숫자로 이 계산을 해 본다. 가로축은 나이, 위 그래프는 두 자본의 크기, 아래 그래프는 "전체 재산 중 주식 비중을 목표에 맞추려면 금융 자산의 주식 비중이 얼마여야 하는가"다. 직업의 성격을 바꾸면 인적 자본이 얼마나 채권 같은지가 달라진다.
인적 자본을 채권으로 보면 알맞은 주식 비중
MN.grow). 인적 자본 중 '채권 같은 몫'이 직업 버튼의 비율)세 번째 실험이 이 관점의 실용적인 교훈이다. 금융권·건설·자영업처럼 경기가 나빠지면 소득이 같이 줄거나 일자리가 위태로운 직업이라면, 주식이 폭락하는 해에 월급도 함께 흔들린다. 그런 사람은 나이가 젊어도 금융 자산을 덜 공격적으로 두는 편이 균형이 맞다. 반대로 정년이 보장되는 공무원·교사는 인적 자본이 국채에 가깝다. 같은 나이라도 직업에 따라 알맞은 비율이 다르다.
글라이드 패스와 타깃데이트
나이에 따라 주식 비중을 줄여 가는 경로를 비행기가 활주로로 내려앉는 길에 빗대 글라이드 패스(Glide path)라 한다. 가장 유명한 어림 규칙은 "주식 비중 = 100 − 나이"다. 기대 수명이 늘고 채권 금리가 낮아지면서 110이나 120에서 빼라는 변형도 쓰인다.
| 나이 | 100 − 나이 | 110 − 나이 | 120 − 나이 |
|---|---|---|---|
| 27세 | 73% | 83% | 93% |
| 40세 | 60% | 70% | 80% |
| 50세 | 50% | 60% | 70% |
| 60세 | 40% | 50% | 60% |
이런 규칙은 출발점으로는 쓸 만하지만 한계가 분명하다. 나이 하나만 보고 직업(인적 자본의 성격), 재산 규모, 연금 수준, 감내할 수 있는 낙폭을 모두 무시한다. 국민연금처럼 평생 나오는 연금이 넉넉한 사람은 그 연금 자체가 큰 채권이라 은퇴 후에도 주식 비중을 더 둘 수 있다. 반대로 3년 뒤 집을 살 계약금처럼 쓸 날이 정해진 돈은 나이와 상관없이 주식에 두면 안 된다.
정해진 은퇴 연도에 맞춰 이 글라이드 패스를 자동으로 따라가는 펀드를 타깃데이트 펀드(Target date fund, TDF)라 한다. 이름에 붙은 연도(예: 2055)가 가까워질수록 운용사가 알아서 주식을 줄이고 채권을 늘린다. 편리하지만 경로는 운용사가 정한 것이고, 보수가 지수 ETF보다 높은 경우가 많다는 점을 함께 따져 봐야 한다.
아래 위쪽 그래프에 손가락이나 마우스로 나이별 주식 비중을 직접 그려 본다. 아래 그래프는 27세부터 60세까지 월 100만원(해마다 3% 늘림)을 그 경로대로 투자했을 때 400개 미래의 잔고 범위다.
글라이드 패스 그리기
세 번째 실험이 글라이드 패스가 내려가는 모양인 이유다. 적립식 투자자의 잔고는 은퇴 직전에 가장 크다. 같은 −30%라도 30세의 2,000만원에서는 600만원이지만 58세의 5억원에서는 1억 5,000만원이다. 이렇게 은퇴 직전과 직후의 수익률 순서가 결과를 크게 좌우하는 위험을 수익률 순서 위험(Sequence of returns risk)이라 하고, 21장에서 인출과 함께 다시 본다.
감내할 낙폭으로 비율 정하기
나이·인적 자본으로 정한 비율도 결국 한 가지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그 비율이 크게 떨어지는 해에 나는 팔지 않고 버틸 수 있는가. 아무리 이론적으로 알맞은 비율이라도 폭락장에서 겁에 질려 팔면, 손실은 확정되고 회복은 놓친다. 그래서 거꾸로, 견딜 수 있는 손실에서 비율을 정하는 방법이 실용적이다.
아래 그래프의 가로선이 "한 해에 이만큼까지는 잃어도 팔지 않겠다"는 선이다. 위아래로 끌어 자신의 선을 정하면, 그 선을 넘지 않는 가장 큰 주식 비중이 표시된다. 시나리오를 바꿔 어떤 종류의 나쁜 해를 기준으로 할지 고른다.
견딜 수 있는 손실에서 거꾸로 비율 찾기
비율을 금액으로 바꿔 보는 것도 중요하다. "−20%"는 담담하게 들리지만, 잔고 1억원에서는 2,000만원, 연봉의 절반이 넘는 돈이다. 숫자로 보는 손실과 계좌에 찍힌 손실은 느낌이 전혀 다르다. 처음 투자하는 사람은 자기가 생각하는 것보다 낙폭을 덜 견디는 경우가 많으므로, 처음에는 조금 보수적으로 시작하고 실제 하락장을 한 번 겪은 뒤 조정하는 편이 안전하다.
해외 분산과 환율
한국 주식 시장은 세계 주식 시가총액의 2% 안팎이다. 한국 주식만 가진 사람은 세계 경제의 아주 작은 조각에, 그것도 반도체 같은 몇 개 업종에 크게 기대는 셈이다. 또 한국에서 일하는 사람의 인적 자본은 이미 한국 경제에 묶여 있다. 해외 주식을 섞는 것은 업종·국가를 넓히는 분산이자, 월급과 다른 곳에 돈을 두는 분산이다.
해외 자산에는 환율이라는 재료가 하나 더 붙는다. 달러 자산을 원화로 환산한 수익은 대략 "현지 수익 + 환율 변화"다. 흥미롭게도 원화는 위기 때 약해지는(환율이 오르는) 경향이 있어서, 세계 주식이 떨어지는 해에 환율 상승이 원화 손실을 일부 메워 주곤 한다. 환율 변동을 선물 등으로 없애는 것을 환헤지(Currency hedge)라 한다.
슬라이더로 주식 중 해외 비중을 바꾸고, 환헤지 여부를 골라 본다.
국내·해외 주식 비중과 환율
MN.ASSETS·MN.CORR. 환율은 이 장만의 가정: 변화율 평균 0·σ 8%, 세계 주식과 상관 −0.3, 국내 주식과 상관 −0.4, 헤지 비용 연 0.5%p)환헤지가 늘 나쁘다는 뜻은 아니다. 채권처럼 원래 덜 흔들리는 해외 자산은 환율 변동(σ 8% 안팎)이 자산 자체의 흔들림보다 커서, 헤지하지 않으면 안전 자산이 위험 자산처럼 움직인다. 그래서 흔히 해외 주식은 환노출로, 해외 채권은 환헤지로 두는 방식이 쓰인다. 다만 원화가 늘 위기 때 약해진다는 보장은 없고, 헤지 비용도 두 나라 금리 차에 따라 바뀐다. 환율에 대해서는 5장을 함께 보자.
한결의 자산배분
한결은 이제 비상금을 따로 떼어 두고, 매달 투자에 넣는 돈을 어떤 비율로 나눌지 정해야 한다. 이 장의 도구를 하나씩 적용해 본다.
주식 70 · 채권 30, 해마다 1월에 한 번 맞춘다
인적 자본만 보면 한결은 금융 자산을 전부 주식에 넣어도 된다. 하지만 한결은 아직 큰 하락장을 겪어 본 적이 없다. 그래서 숫자 두 개로 선을 그었다. 나쁜 해(μ−2σ)에 약 −17%, 2008년 같은 해가 오면 약 −26.5%(주식 −40%·채권 +5%). 잔고 1,000만원이면 각각 약 170만원과 265만원이고, 한결은 이 정도까지는 팔지 않고 버티겠다고 정했다. 이 기준을 넘지 않으면서 나이에 비해 너무 보수적이지 않은 비율이 주식 70 · 채권 30이다. 가정값으로 기대수익 6.3%, 변동성 약 11.5%, 샤프 지수 약 0.33이다.
효율적 투자선 위에 한결을 찍어 보면, 주식·채권 두 자산만의 조합 곡선에서는 최소분산점(주식 약 10%)보다 위쪽, 곧 효율적인 구간에 있다. 금을 섞으면 같은 위험에서 0.1%p쯤 더 높은 조합이 있지만, 그 차이는 가정의 오차보다 작아서 한결은 단순함을 택했다. 주식은 국내·해외 지수를 함께 담고, 리밸런싱은 연 1회(1월), 그 사이에는 매달 넣는 돈으로 모자란 쪽을 먼저 산다. 비율이 ±5%p 넘게 벌어지면 1월을 기다리지 않고 맞춘다.
핵심 정리
- 포트폴리오가 얼마나 흔들릴지는 종목보다 주식·채권·현금의 비율이 가장 크게 정한다. 주식은 엔진, 채권은 완충재, 현금은 비상 연료, 금은 보험 역할을 한다.
- 섞은 포트폴리오의 기대수익은 가중 평균이지만 변동성은 상관계수가 1보다 작으면 평균보다 작다. ρ가 낮을수록 조합 곡선이 왼쪽으로 휘고, ρ = −1이면 위험 0인 비율이 생긴다.
- 같은 위험에서 기대수익이 가장 높은 조합을 이은 선이 효율적 투자선이고, 가장 왼쪽 점이 최소분산 포트폴리오다. 투자선은 입력한 가정만큼만 정확하다.
- 무위험 자산과 위험 자산 묶음을 섞으면 직선(자본시장선) 위에 놓인다. 기울기가 샤프 지수다.
- 내버려 두면 비율은 주식 쪽으로 표류해 위험이 커진다. 리밸런싱은 처음 정한 위험을 지키고, 오른 쪽을 팔고 내린 쪽을 사는 일을 규칙으로 대신한다. 연 1회나 ±5%p 밴드면 충분하고, 너무 잦으면 비용이 이득을 먹는다.
- 젊을 때 주식 비중을 높여도 되는 이유는 채권 같은 인적 자본을 크게 갖고 있기 때문이다. "100 − 나이" 같은 규칙은 직업·연금·쓸 날이 정해진 돈을 무시하는 어림값이다.
- 마지막 시험은 감내 낙폭이다. 나쁜 해에 팔지 않고 버틸 수 있는 손실에서 거꾸로 비율을 정하고, 해외 분산과 환율의 쿠션 효과도 함께 따진다.
확인 퀴즈
1. 변동성이 같은 두 자산을 반반 섞었다. 포트폴리오의 변동성이 각 자산의 변동성과 똑같이 유지되는 경우는?
2. 채권 100%를 가진 사람이 주식을 10% 섞었다. 이 장의 가정(상관계수 0.1)에서 일어나는 일로 옳은 것은?
3. 주식 70·채권 30으로 시작해 30년 동안 리밸런싱을 하지 않았다. 가장 가능성이 높은 결과는?
4. 같은 27세라도 금융 자산의 주식 비중을 더 낮게 두는 것이 합리적인 사람은?